1979년 10월 26일,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가 발생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측근의 총탄에 쓰러진 10.26사태는 단순한 암살 사건을 넘어 권력의 본질과 인간의 욕망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민호 감독의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이 역사적 사건을 둘러싼 40일간의 긴장과 갈등을 섬세하게 재구성합니다. 역사를 영화로 배우면 안 되지만, 이런 시대극이 있기에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성찰할 수 있습니다.

10.26사태를 둘러싼 40일간의 긴장
영화는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로 향하는 대통령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실제 당시 대통령 의전 차량이었던 캐딜락 플리트우드 68 리무진 모델을 어렵게 대여해 고증의 정확성을 높였습니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를 모티브로 한 김규평 역의 이병헌은 대통령 암살이라는 엄청난 계획을 세우고 각오를 다집니다.
원래 시나리오는 미국 하원 청문회로 시작했지만, 1차 시사 후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건 당일을 먼저 보여준 뒤 40일 전으로 플래시백하는 방식으로 재편집했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관객에게 결말을 먼저 제시하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라는 질문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실제 외경을 촬영하고, 실내는 당시 청문회 장소를 똑같은 규모로 세트 제작해 현장감을 살렸습니다.
코리아게이트의 핵심 증언자인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은 곽도원이 연기합니다. 실존 인물 김영욱을 모티브로 한 이 캐릭터는 6년 3개월이라는 대한민국 정보기관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기관장을 역임한 인물입니다. 청문회에서 "지금 한국 민주주의를 비극으로 만들고 있는 자"를 고발하려는 박용각의 모습은 권력의 핵심에서 벗어난 자의 복수이자 양심의 발로입니다. 영화는 이 청문회를 실제보다 2년 뒤로 설정해 40일이라는 시간 안에 내용을 압축했습니다.
제3대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을 모티브로 한 곽상천 역의 이희준은 캐릭터를 위해 무려 25kg을 증량했습니다. 살이 찌면서 호흡과 발성이 달라져 연기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특히 걸음걸이에서 캐릭터가 부각되는 효과를 얻었습니다. 이성민이 연기한 박통의 분장은 엄청난 싱크로율을 자랑합니다. 특수 분장으로 귀를 붙이고 잇몸에 틀을 넣어 입이 튀어나오게 만들었으며, CG로 한 땀 한 땀 리터칭까지 진행했습니다. 대통령 집무실 역시 세트로 제작했으며, 소품 하나하나 바닥 카페트까지 미술팀의 철저한 고증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권력암투 속 인간의 욕망과 배신
중앙정보부장과 경호실장의 대립은 영화의 핵심 갈등 구조입니다. 실제로 당시 두 사람의 대립은 청와대 안에서도 유명했으며, 주변 인물 인터뷰에 따르면 마치 6.25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영화는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 마치 초등학생처럼 감정적으로 싸우는 설정을 통해 권력의 본질을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육사 시험에 낙방해 중령으로 제대한 곽상천과 육사 2기 출신인 김규평의 대립은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닌 열등감과 자존심의 충돌입니다. 실존 인물 차지철은 예비역 중령 출신이고 김재규는 예비역 중장 출신으로, 육사 출신에 대한 열등감이 있던 차지철은 여덟 살이나 많은 김재규를 심하게 대했다고 전해집니다. 영화 속 "개씹새끼 꽉꽉이"라는 대사는 이러한 현실을 과감하게 드러냅니다. 이희준 배우는 촬영 중 목에 멍이 들 정도로 격렬한 연기를 펼쳤습니다.
미국으로 날아간 김규평은 박용각과 재회합니다. 워싱턴 공항에서 실제 촬영 후 CG로 옛 공항으로 만든 장면에서 두 사람의 미묘한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부장님이 되셨어?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알고 덥석 앉냐?"라는 박용각의 대사는 권력의 무게와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곽도원 배우의 메소드 연기는 이병헌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매 테이크마다 다른 톤을 구사하면서도 모두 박용각 캐릭터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
데보라 심 역의 김소진은 재미 언론인과 로비스트를 조합한 캐릭터입니다.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는데 난 고향을 못가네"라는 대사는 권력의 주변부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의 비애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첩보물의 클리셰를 벗어나 중성적인 캐릭터로 디자인해 현실감을 더했습니다. 박통이 중앙정보부를 불신해 따로 만들었다는 스위스 비밀계좌 전담 이아고는 영화 속 맥거핀으로 작동합니다. 실제로는 그런 조직이 없었지만, 마지막에 전두혁이 금고에서 금괴와 계좌 목록을 가져가는 장면은 이아고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남깁니다.
배우연기로 완성된 시대의 초상
이병헌과 곽도원의 첫 연기 호흡은 영화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입니다. 감독은 무겁고 차갑고 건조한 영화에 배우들의 연기가 부족하면 큰일 난다고 생각해 가장 연기 잘하는 사람만 캐스팅했다고 밝혔습니다. 동시에 지금까지 보지 못한 배우의 조합을 만들려 했습니다. 곽도원의 갑작스러운 즉흥 연기를 이병헌이 NG 없이 받아주는 장면들은 두 배우의 연기력을 증명합니다.
이성민의 박통 연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늙어 보이도록 분장을 달리했습니다. 흰머리를 많이 그리고 피곤해 보이는 분장으로 점점 초췌해지는 권력자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임자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대사를 박용각과 김규평에게 똑같이 하는 장면은 권력자의 이중성을 보여줍니다. 침대 귀퉁이에서 불안하게 자고 있다가 전화 벨소리에 놀라는 디테일한 연기는 권력의 불안을 시각화합니다.
이희준의 25kg 증량은 단순한 외형 변화를 넘어 캐릭터의 본질을 바꿨습니다. 호흡과 발성이 달라지면서 곽상천이라는 인물의 거칠고 폭력적인 성격이 더욱 생생하게 드러났습니다. 계단을 일렬로 쪼르르 오르는 장면을 살리기 위해 연회 공간을 2층으로 설정하고 나선형 계단을 각진 계단으로 바꾼 연출도 인상적입니다. 이런 디테일은 권력 서열을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부마 민주항쟁 당시 "300만명도 희생시켰는데 우리가 뭐 100만 200만 탱크를 밀어버린다고 큰 일 나겠어요?"라는 곽상천의 대사는 권력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이 장면에서 완전히 소외된 김규평의 모습은 그가 왜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만듭니다. 실제로 김재규는 전화통화로 퇴짜를 맞고 이 자리에 오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사건 당일 "이딴 버러지 같은 새끼 옆에 두고 정치 하시니까 나라가 이 모양이 꼴 아닙니까"라는 유명한 버러지 발언은 여러 사람의 증언이 엇갈려 실제로 김재규가 한 말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합동 수사본부가 사건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추가되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중간에 총이 고장 나고 불이 꺼지는 것까지 실제 사건을 그대로 고증했습니다. 이병헌이 눈 밑 떨림을 연기로 승화시키는 장면, 안경에 맺힌 빗물과 곧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은 배우의 연기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영화는 김규평이 남산이 아닌 육본으로 향하는 장면을 대사 없이 차가 유턴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왜 중정이 아닌 육본을 향했는지, 남산으로 갔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는 역사적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감독은 영화가 이 미스터리를 규정짓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겸손한 태도이자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선택입니다.
권력의 핵심 인물들의 갈등과 심리 변화를 긴장감 넘치게 그린 이 작품은 권력에 대한 욕망과 그로 인해 파멸되는 인간의 말로를 보여줍니다. 디즈니+의 메이드인코리아를 보고 중정이 나오는 비슷한 시대 배경의 남산의 부장들이 생각나 다시 보게 되었다는 관객의 말처럼, 이 영화는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닌 현재와 대화하는 작품입니다.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과 함께 이 역사적 사건을 다각도로 조명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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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hpk1BlNNZ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