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파반느>는 박민규 작가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소설 특유의 어둡지만 끝내 어딘가에서 빛을 발견하게 만드는 감정선을 영상으로 담아낼 수 있을지 우려가 있었지만, 영화는 기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파반느는 본래 느리고 품격 있는 행렬 춤을 의미하며, 제목에 걸맞은 속도와 정서로 청춘 로맨스의 시간을 천천히 펼쳐 보입니다.

파반느가 전하는 빛의 상징과 사랑의 의미
영화 파반느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빛'입니다. 이 작품에서 사랑이란 서로의 영혼에 불을 켜 빛을 밝혀주는 행위로 표현됩니다. 그렇게 빛나는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고,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건 거창한 기적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인간이 또 다른 보잘것없는 인간에게 그래도 당신은 빛난다고 말해 주는 일입니다.
영화는 인물마다 각자의 빛을 부여했습니다. 한 번도 불이 켜진 적이 없었던 미정의 꺼진 전구, 사랑을 찾아 켜졌었지만 배신으로 꺼진 경록 엄마의 정글, 죽고 싶어 했던 요한의 냉장고 불빛, 그리고 경록이 사고를 당한 순간 트럭의 헤드라이트 불빛까지 모두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미정은 못생겼다는 이유로 세상의 경멸과 혐오를 받아오던 인물입니다. 영화에서는 미정을 못생겼다고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그녀를 공룡이라 부르며 위협적인 존재로 소비합니다. 사람들이 본 미정의 얼굴은 사랑을 받아본 적도 줘본 적도 없어서 불이 꺼진 상태였습니다. 아무도 그녀가 빛날 수 있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의 불을 켜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경록의 사랑은 미정이라는 꺼져 있는 전구를 켜 빛을 밝히게 했습니다.
경록이 처음 미정을 만난 순간, 경록은 요한의 보드를 타고 지하 주차장 2층에서 4층으로 계속 내려갑니다. 내려갈수록 백열등의 하얀 불빛은 노란 빛으로 바뀌며 점차 어두워졌고 미정은 불이 꺼졌다가 켜졌다가 하는 어두운 창고 안에 있었습니다. 경록이 창고 안의 전구를 새로 갈아끼워 준 건 단순히 공간을 밝히는 행위가 아니라 미정에게 빛을 전해주며 당신도 빛날 수 있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백화점 주차장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시작된 관계가 빛이 드는 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과정은, 사랑이 사람을 구할 수도 더 깊이 흔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잔잔하지만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원작 소설과 영화의 차이점과 연출의 묘미
영화는 원작 소설의 핵심을 유지하면서도 영상 매체에 맞는 효과적인 각색을 선보였습니다. 백화점 주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경록이 요한과 같은 데이비드 보위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는 점에서 요한에게 합격의 목걸이를 받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소설에서는 조금 더 철학적인 이유였습니다. 유한이즌 주스를 마시던 경록이 쪽쪽 주스를 끝까지 빤 팩에 푹 입김을 불어 풍선처럼 팩을 팽팽하게 만들자 그 모습을 본 요한이 합격이라고 말합니다. 끝까지 쪽 빨기만 하는 놈들은 되게 가지려고만 하는 놈들이라 세상을 빨아먹기만 할뿐 채울 줄도 채울 생각도 없는 놈들이라는 거였습니다. 영화는 임팩트 있게 두 사람의 만남을 설명하기 위해 연출을 변경했습니다.
요한과 경록, 미정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켄터키오프는 H가 아니라 Hope 희망이라고 간판이 되어 있었습니다. 유토피아 백화점에서 찾지 못한 유토피아를 그들은 켄터키오프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켄터키오프에 간 요한과 경록이 앉은 4인용 테이블 뒤에는 세 마리의 붕어가 든 어항이 있습니다. 색깔과 생김새 모두 전혀 다른 세 마리의 물고기들은 어항처럼 좁은 세상에 갇힌 경록과 요한, 미정을 의미하는 것 같았습니다.
요한이 자살 시도를 하고 미정이 경록을 떠난 이후 켄터키오프 간판의 H에 불이 꺼져 희망을 완성시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불 꺼진 켄터키오프 안에 있는 어항 속 물고기들은 여전히 빛을 받으며 헤엄칩니다. 요한이 얘기하던 해피엔딩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문장처럼 짙은 어둠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니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걸 보여준 것입니다.
소설에서 미정은 경록에게 목도리를 떠 준 것으로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미정이 경록에게 스웨터를, 경록이 미정에게 목도리를 떠 준 것으로 각색이 됐습니다. 일방적인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빛나게 해준 사랑이었다는게 더 돋보이는 연출이라 굉장히 좋았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순수하게 시작되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는 순간에는 늘 평가와 시선, 비교와 불안이 함께 들어옵니다.
결말의 의미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과연 경록은 왜 마지막에 웃고 있었을까요? 12월 31일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던 경록은 교통 사고를 당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다 다시 내려서 사랑한다 다시 꼭 만나자라고 말한 후 버스를 탄 경록의 얼굴로 환한 빛이 비춰 보였던 건 버스 맞은편에서 오는 트럭의 빛이었습니다. 그 빛은 단순한 헤드라이트가 아니라 나는 사랑하고 있고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얼굴을 밝힌 순간처럼 보였습니다.
5년 후 요한은 모리스 라벨의 곡명과 같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소설을 집필했고 경록의 것이었던 데이비드 보위가 그려진 하얀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소설에서 경록이 죽지 않고 살았고 기억을 잃었었지만 미정과 재회한 후 기억을 되찾아 미정과 함께 아이슬란드에도 가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영화는 경록은 죽었지만 그가 켜준 불은 꺼지지 않았다는 걸 보여줍니다. 요한과 미정은 그 빛을 안고 살아갑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된 미정은 사람들 속에서 환하게 웃을 수 있게 됐고 세상 무기력했던 요한은 소설을 집필하고 밴드 활동도 하게 됐습니다. 어쩌면 이 작품이 말하는 기적은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서로의 인생을 완전히 구원하지는 못해도 잠시라도 불을 켜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누구나 왕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켄터키오프에서 연주회를 하는 장면에서는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나 어항과 물고기 세 마리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는 꼭 인디언처럼 말을 타고 달리다가 잠시 말에서 내려 뒤쳐진 영혼을 기다리듯이 경록이 말에서 잠시 내려 어디선가 요한과 미정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밝혀준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과연 이 작품은 왜 살아 있는 왕녀를 위한 왈츠가 아니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일까요? 파반느의 템포는 왈츠보다 느리고 왈츠는 비교적 경쾌하거나 로맨틱한 분위기인 반면 파반느는 무게감 있고 장중한 분위기입니다. 만약 살아 있는 왕녀를 위한 왈츠였다면 이 작품은 예쁜 여주인공이 잘생긴 남에게 사랑받는 로맨틱한 해피엔딩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됨으로써 사라진 이상에 대한 우아한 애도를 하는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로맨스의 설렘에만 머물지 않고, 사랑이 시작될 때 따라붙는 자격의 문제를 조용히 끌어올린 이 영화는 결국 살아 있는 왕녀의 축제가 아니라 상처받고 사라진 존재들을 위한 느린 애도입니다. 그리고 그 애도 속에서 우리는 작은 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감정이 빨리 결론 나는 이야기를 택하지 않는 영화라서 속도를 조절할 때 급한 성격의 소유자는 답답함을 느낄 수 있지만, 바로 그 느린 속도 속에서 파반느는 진정한 가치를 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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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IH1w73f-Lg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