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비내린 호치민의 여름,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정원과 은호는 16년 만에 재회합니다. 태풍 캐슬린으로 비행이 취소되고 우연히 같은 호텔방을 쓰게 된 두 사람은 과거를 회상하며 이별의 의미를 되새기게 됩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멜로 영화가 아니라 2000년대 후반 대한민국 청춘들의 좌절과 성장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시대의 초상입니다.
붉은 소파가 상징하는 청춘의 꿈과 현실
2008년 여름,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정원과 은호는 산사태로 막힌 길에서 우연히 만나 인연을 시작합니다. 보육원에서 자란 정원에게 '집'이란 단순히 건축물이 아니라 언제든 돌아갈 수 있고 조건 없이 밥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즉 가족이 있는 장소를 의미했습니다. 은호의 식당에서 받은 락교 탕탕이와 낡은 식탁, 노을 지는 바다에서 함께 소원을 빌던 순간들 속에서 정원은 비로소 자신의 뿌리를 낼 곳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난했던 시절 길가에 버려진 낡은 붉은 소파를 주워와 좁은 방에 억지로 구겨넣던 날, 그들은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습니다. 회색빛 현실 속에서 유일하게 채도가 높았던 그 붉은 소파는 그들이 꿈꾸던 안락한 가정의 상징이자 서로를 향한 뜨거운 열망이었습니다. 정원의 꿈은 건축사라는 직업만이 아니었고, 은호의 꿈은 멀티 엔딩이 가능한 다양하고 재미난 엔딩이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해가 수평선에 닿은 순간부터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소원 100번을 반복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으며 서로의 꿈을 응원했습니다.
하지만 은호의 아버지가 당뇨와 백내장으로 쓰러지면서 현실은 냉혹하게 다가옵니다. 은호는 게임 개발을 멈추고 대출을 받기 위해 회사에 들어가야 했고, 정원은 모델하우스 알바를 하며 뒤꿈치가 까져 피가 날 정도로 일했습니다. 서로를 향한 희생은 점점 고마움이 아닌 부채감이 되었고, 사랑하는 여자의 손에 피를 묻히게 한 자신의 무능함과 가난이 은호를 점점 잠식해갔습니다. 가난은 사람의 사고를 마비시키고 멍청하게 만든다는 진리를 두 사람은 뼈저리게 체험하게 됩니다.

반지하방 문턱이 거부한 사랑의 무게
집주인 아주머니가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하면서 두 사람은 빛이 잘 들던 방을 떠나 눅눅한 반지하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정원이 꿈을 꾸며 만들었던 모형집을 쓰레기 봉투 위에 놓아둔 채로 말입니다. 그래도 정원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큰 집이 없어도 자신의 집은 곧 은호의 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문턱만큼이나 지나기 힘든 반지하방의 문은 두 사람의 행복을 상징하던 소파를 절대로 들여보내지 않았습니다.
삶이 고단해지고 반지하로 이사하게 되면서 그 무겁고 낡은 소파는 결국 짐짝 취급을 받습니다. 좁은 계단을 내려오며 낑낑대는 두 사람의 모습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를 짊어진 청춘의 초상처럼 보였습니다. 정원은 그 소파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소파로 대변되는 은호와의 행복을 지키고 싶어 필사적으로 매달렸고 결국 손을 다쳐 피를 흘리고 맙니다. 마치 이 차가운 현실엔 너희가 꿈꾸던 안락함 따윈 허락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그 붉은 소파가 길가에 덩그러니 놓여 비를 맞는 장면에서 우리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청춘의 꿈과 사랑이 어떻게 폐기 처분되는지를 목격하는 듯한 비통함을 느끼게 됩니다. 소파가 버려지던 날 정원의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가구를 버리는 게 아니라 서울에 내 집 하나 갖고 싶다는 그 소박한 꿈조차 사치임을 인정하는 패배의 선언과도 같았습니다. 은호는 자신의 꿈을 무시당했으나 현실의 벽에 막혀 자신을 때린 상사에게도 비굴하게 사과해야 했고, 한때 같은 꿈을 꿨던 친구들은 가족의 도움으로 고생 없이 잘 지내며 오히려 은호의 꿈을 몹시 비웃어버렸습니다.
청춘의 상실과 성장, 그리고 감사의 의미
정원은 어둑한 집안에서 힘없는 은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비록 쪼그란 컵라면이지만 식사 한 기 함께하지 않는 이곳은 자신이 찾아왔던 가족과 집이 아니게 돼버렸고, 내가 떠나지 않는다면 이 고통이 계속 반복될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도망치는 게 아닌 떠나며 놓아줘야 할 때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은연중에 느낀 정원은 짐을 챙겨 나갑니다. 은호는 황급히 달려나가 지하철에서 정원을 찾지만, 곧 닫힐 문을 사이에 두고 비에 젖은 정원에게 우산을 건네지도, 함께 타지도,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도 건네지 못하고 한 발짝 물러섭니다.
정원을 사랑하지만 자신과 함께라면 함께 망가질 걸 알고 있고, 지금 붙잡는 건 사랑이 아니라 이기심이라는 걸 잘 알기에 은호 자신도 정원을 떠나 놓아주기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제야 은호는 평탄한 스토리를 포기하고 주인공의 시련을 받아들입니다. 자신의 꿈이었던, 자신의 사랑이 응원해줬던 게임 개발을 다시 시작하고, 정원 또한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를 다하고 열심히 공부합니다. 결국 둘은 각자 현실의 꿈을 찾아내고 시간이 흘러 현재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그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원은 오히려 지독하게 가슴 아픈 상실 덕분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자신의 집을 짓는 법을 배웠고, 은호는 도망치지 않고 진실을 마주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걸 잘 아는 둘이었기에 눈물을 쏟아내고 그 자 후련한 듯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고, 그때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며 마지막 감사 인사를 건냅니다. "다 해주고 싶었는데 모두 다 받았어", "그때 내 집이 돼줘서 정말 고마웠어 은호야"라는 대사는 이별의 아픔을 넘어선 성숙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은호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정원에게 남긴 편지를 전달합니다. 편지에는 매년 이맘때면 정원이 생각나고, 인연이라는 게 마지막까지 잘되면 좋겠지만 서로를 실망시키지 않는 게 쉽지는 않으며, 사람의 삶도 마음도 변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원이는 참 귀한 사람이었어. 항상 밥은 꼭 잘 챙겨 먹고, 아저씨 반찬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라며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집이라는 마음을 전달합니다. 은호가 만든 게임의 엔딩에서는 처음 만났던 저녁 바다에 제인과 에릭이 함께 앉아 색을 날려보내자 흑백 바다가 아름다운 색들로 채워집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앉을 소파 하나 놓을 공간이 없는 사회, 청춘들에게 꿈을 꾸라고 말하면서 정작 그 꿈을 펼칠 물리적 공간은 허락하지 않는 사회를 이 영화는 고발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집을 떠나 이사를 한다고 해서 과거에 내가 살았던 집이 아닌 게 되는 건 아니라는 위로도 건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떠나보낸 과거를 추억하고 그 슬픔을 양분 삼아 성장하고 남습니다. 수많은 '만약에'라는 가정이 우리를 괴롭힐 때도 있지만, 그 아픈 가정들이 있어서 우리는 도망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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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로 만약에 우리의 스토리 해석/바로영화: https://www.youtube.com/watch?v=fazPhnNL4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