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더 엑스'를 각색한 작품으로,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9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전 세계적 주목을 받았습니다. 완벽해 보이던 중년 남성 유만수의 삶이 갑작스러운 해고로 무너지면서 벌어지는 비극적이면서도 코믹한 이야기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날카롭게 조명합니다.

이병헌이 보여준 압도적 연기력의 정점
이병헌의 유만수 캐릭터는 배우 인생에서 한 번 만나기 힘든 복합적인 역할입니다. 태양제지에서 20년 넘게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온 만수는 펄프맨상까지 받은 인재였지만, 미국계 사모펀드의 구조조정으로 하루아침에 해고당합니다. "미국에서는 해고를 도끼질한다 그런다면서요"라는 대사처럼, 도끼는 영화 전반에서 해고이자 살인을 상징하는 이중적 기호로 작동합니다.
이병헌은 자신의 카리스마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리며 평범한 아저씨의 비참함을 완벽하게 구현합니다. 면접에서 "질문을 잘 파악을 좀 못 하시는 것 같은데"라는 말에 당황하는 장면, "싫은데요"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성격이 단점이라며 자조하는 모습은 관객의 웃음과 동시에 연민을 자아냅니다. 3개월간 필사적인 구직 활동을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거절뿐이고,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면서 만수는 점점 극단적인 선택으로 치닫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만수가 경쟁자들을 제거하기로 결심하는 과정입니다. "당신이 사라져야 내가 살아"라는 논리로 자신을 합리화하지만, 실제 행동은 서툴고 예측 불가능한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전개됩니다. 알코올 중독자 9번모, 구두 가게 점원으로 전락한 고시조, 잘나가는 반장 최선출을 타겟으로 삼지만, 이들 역시 만수처럼 제지업계에서 수십 년 종이밥을 먹어온 인생들입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주문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세뇌하는 만수의 모습에서, 이병헌은 선한 본질을 지녔으면서도 도덕적 자기 타협 끝에 상상 못할 폭력에 다다르는 인간의 나약함을 완벽하게 표현합니다.
손예진이 연기한 아내 미리는 이 영화의 정서적 닻입니다. 싱글맘이었던 그녀에게 청혼했던 용감한 총각을 떠올리며 "당신도 할 수 있어. 나도 새 출발했잖아"라고 격려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미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직시하고 있으며, 가족의 운명을 조율하는 실질적 결단을 내리는 인물입니다. 박희순, 이성민, 차승원 등 주연급 조연들의 연기도 압도적입니다. 각자의 기구한 삶을 순간적으로 드러내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들의 연기는 영화의 완성도를 한층 높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건축 미장센과 공간의 서사
박찬욱 감독의 영화 세계에서 건축은 곧 영화적 철학입니다. 건축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공간 구성은 박찬욱 영화의 핵심적 요소가 되었고, '어쩔 수가 없다'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닙니다. F.W. 무르나우가 말한 "중요한 것은 스크린 위에 보이는 것"이라는 철학을 체화한 박찬욱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향을 깊게 받아 공간 그 자체를 이야기로 만듭니다.
만수의 저택은 중년 남자의 로망을 구체화한 공간입니다. 어린 시절 살던 집을 직접 사서 손수 창고를 짓고 온실을 만들었던 그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만수가 평생 쌓아온 성취의 상징입니다. "나 아홉 살 때부터 평생 열에 한 번씩 이사 다니면서 이 집 대처주시자가 얼마나 노력해서... 내가 하나하나 구석구석"이라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 이 집은 만수의 정체성 그 자체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제지공장에서 근무하면서 나무를 베어내는 것이 직업임에도 취미는 온실을 만들어 나무를 기르는 아이러니입니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분재나무는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합니다. 나무가 자연스럽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철사로 억지로 묶고 다듬어서 아름답게 만드는 분재의 모습은, 넥타이를 매어주는 손예진의 모습과 오버랩되며 억압된 남성성과 통제된 삶의 메타포로 읽힙니다.
최선출, 9번모, 고시조의 공간들도 각각의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최선출의 유튜브 영상 속 배경, 9번모 부부의 좁은 아파트, 고시조가 일하는 구두 가게는 모두 몰락의 단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9번모 내외와 총을 두고 벌이는 몸싸움 장면은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음악과 함께 연출되어 슬랩스틱 코미디와 폭력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며, 공간 그 자체가 극적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영화의 마지막 면접 장면에서 로봇이 종이를 옮기는 불 꺼져가는 공장은 AI 자동화 시대의 공포를 상징하며, "적어도 한 명 정도는 필요지 않냐"라는 만수의 절규는 공허한 공간 속에서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옵니다.
중년 남성의 존재론적 위기와 시대의 비극
"왜 우린 직장을 잃으면 존재론적 위기에 빠지게 될까요? 왜 돈 없이 직장 없이 스스로를 정의할 수 없을까요?" 영화는 이런 남성의 보편적 슬픔을 깊이 있게 파고듭니다. 노동자를 받아들인 것도 산업이요 쓸어버리는 것도 산업입니다. 사회는 필요할 때 역할을 주고 필요가 사라지면 버립니다.
만수는 아내의 조언처럼 다른 업종으로 전환할 수도 있었고, 집을 팔고 아파트로 이사할 수도 있었습니다. "집 팔면 대출 갚고 대수동의 아파트 전세는 가능해"라는 현실적 대안이 있었지만, 만수는 그것이 자신이 누리던 삶과 멀어지는 방법이라고 여겨 거부합니다. "3개월만에 취직할 자신 있댔지 그지?"라는 아내의 질책에도 "나는 이렇게 살게 돼 있어 어쩔 수가 없어"라고 답하는 만수의 모습에서, 우리는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에 집착하는 중년 남성의 비극을 목격합니다.
영화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만수의 부친 이야기로 이를 은유합니다. 국가가 필요할 때 전쟁에 보내고, 필요가 사라지면 버리는 시스템의 냉혹함은 세대를 넘어 반복됩니다. "내 업종에 몸받쳐 일하면 삶은 의미가 있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돈을 많이 벌고 빛나는 결과를 얻는다"라는 믿음으로 교육받고 길러져 왔지만, 이젠 그 모든 게 무의미해지는 인류의 어두운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어쩔 수가 없다"는 주문은 영화 전반에서 위선적 합리화의 도구로 작동합니다. 미국 본사도 해고를 통보하며 "어쩔 수가 없다"고 말하고, 만수도 살인을 앞두고 같은 말을 반복하며, 새로운 고용주 역시 AI 자동화 시스템 도입을 정당화하면서 같은 말을 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어쩔 수가 있었다"는 진실입니다. 선택의 순간마다 다른 길이 있었지만, 만수는 자신의 자존심과 체면을 지키기 위해 비열한 폭력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실직 말고도 영화 곳곳에서 인간적 몰락의 징후가 보입니다. 만수는 아내의 불륜을 의심해 가정의 균열을 일으키고, 휴대폰을 훔친 의붓자식들에게 "친구가 그런 거라고" 협박합니다. 최선출의 집에선 끊었던 술을 다시 들이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알코올이 몸에 스며들 때의 표정은 살인보다 더 타락적으로 보입니다. 이런 행위들이 "어쩔 수가 없다"는 주문 밖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더욱 충격적입니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자본주의의 도끼질 속에서 판없이 취약한 남성의 심리를 지독하게 파고들며, 누리던 삶을 잃은 한 남자가 어떤 끔찍한 깨달음에 도달하는지 보여줍니다. 이병헌과 손예진을 비롯한 주연급 조연들의 압도적 연기력, 박찬욱 감독 특유의 건축 미장센과 공간 서사, 그리고 AI 시대 중년 남성의 존재론적 위기를 코미디의 외피 속 비극적 통찰로 담아낸 이 작품은 현대 한국 영화의 새로운 이정표입니다. "종이는 우리의 삶"이라던 만수가 결국 로봇이 종이를 옮기는 공장에서 "이젠 됐다"며 쾌재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의 공허함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뼈아픈 현실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77Yes279dV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