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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리뷰 (연기력, 감정선, 역사해석)

by 무비가든 2026.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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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준 감독의 신작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과 엄흥도의 관계를 통해 권력에서 멀어진 왕과 평범한 백성이 나누는 진심을 그린 작품입니다. 역사적 비극을 알면서도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이 영화는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과 섬세한 감정선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12세 관람가임에도 불구하고 깊이 있는 서사와 인물들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며,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 인간적 교감의 가치를 전합니다.

왕과 사는 남자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력이 만든 명장면


'왕과 사는 남자'의 가장 큰 강점은 단연 배우들의 연기력입니다. 유해진 배우는 엄흥도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영화 전체를 이끌어갑니다. 자기 옷을 입은 듯 자연스러운 연기로 촌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가볍게 욕을 하는 장면이나 단종에게 수라상을 내서 가져다주는 장면들에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합니다. 특히 후반부의 감정 연기에서는 터져나오는 절절함으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단종 역의 박지훈 배우는 눈빛 연기만으로 인물의 내면을 표현해냅니다. 초반 궁궐에서 겁에 질린 무기력한 소년의 모습에서 시작해, 광천골 사람들과 교감하며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한명회 앞에서 처음으로 호통을 치는 장면에서의 단호한 눈빛, 호랑이를 쓰러뜨린 후 달라진 표정,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처연한 모습까지 한 컷도 놓칠 수 없는 명연기를 보여줍니다.
유지태 배우의 한명회는 벌크업을 통해 무거운 카리스마를 완성했습니다. 단종을 내려다보며 조롱하듯 경고하는 장면, 의도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며 도발하는 장면, 그리고 단종의 변화를 감지하고 불안해하는 미묘한 표정 변화까지 철저히 계산된 연기로 당대 최고 권력자의 위엄을 표현합니다. 전미도 배우의 매화, 이준혁 배우의 금성대군, 박지환 배우, 안재홍 배우 등 조연들도 연기 구멍 없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입니다.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장면 하나하나에 감정을 실어야 하는데, 놓쳐도 될 만한 장면이 한 컷도 없었다는 평가가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밥과 호랑이로 그려낸 섬세한 감정선


영화는 '밥'과 '호랑이'라는 두 가지 상징을 통해 단종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광천골 사람들에게 밥 한 끼는 생존의 문제입니다.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따뜻한 쌀밥을 거부하는 단종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지만, 점차 그를 안쓰러워하고 걱정하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자신들의 기준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내어주는 모습은 진심 어린 배려를 보여줍니다.
단종이 이런 마음을 알게 되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고, 이후 밥을 함께 나눠 먹는 장면은 생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밥은 예로부터 서로의 마음을 잇고 온기를 나누는 가장 따뜻한 매개체였습니다. 수라상이 아닌 소박한 밥상 앞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하는 단종의 모습은 왕과 백성이 평등하게 마음을 나누는 순간을 상징합니다.
호랑이는 두 차례 등장하며 극적인 전환점을 만듭니다. 초반 엄흥도가 노루를 사냥했다가 호랑이에게 쫓기는 장면에서 그는 겁에 질려 도망칩니다. 하지만 나중에 절벽 위에서 호랑이가 마을 사람들과 단종을 위협할 때, 단종은 도망치지 않습니다. 자신을 걱정하며 찾아나선 백성이 눈앞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한 순간, 겁이 나는 순간에도 활을 들어 단번에 호랑이를 쓰러뜨립니다. 이 장면에서 단종은 살아갈 이유와 용기를 얻고, 나의 백성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무기력한 소년의 모습은 사라지고 단종의 눈빛은 단호해집니다. 다만 이 장면 이후 단종의 변화가 다소 급격하게 느껴진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밤 사이 고뇌의 시간을 보여주면서 날이 밝아오는 새벽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단종의 얼굴이 천천히 드러났다면, 그 변화가 좀 더 자연스럽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비극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역사 해석


'왕과 사는 남자'는 이미 알고 있는 비극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느냐에 집중합니다. 영화는 등장인물을 최소화하여 핵심 인물들만 남겨 놓고 그들의 관계와 감정에 집중합니다. 단종의 이야기임에도 수양대군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으며, 궁중의 여인들이나 단종의 부인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수많은 궁녀가 함께 유배되었지만, 영화 속 단종의 곁에는 상궁 매화만 있을 뿐입니다.
청령포는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단종이 청령포에 처음 왔을 때, 마을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었을 때, 그들과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때 청령포는 유난히 아름답게 표현됩니다. 특히 단종이 죽음을 맞이하는 날, 반정을 준비할 때는 그렇게 비가 쏟아지더니 햇빛조차 너무 아름다운 풍경으로 대조됩니다. 아름다워서 더 슬픈 곳, 그것이 영화 속 청령포의 이미지입니다.
결말 부분에서는 인물들의 변화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단종은 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엄흥도 역시 단종의 모습에 감화되어 그의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뒤, 눈치 보지 않고 선택하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합니다. 역사에 기록된 바와 같이 단종의 시신을 거두지 말라는 명을 어기고 그의 시신을 거두는 선택은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결정이었지만, 엄흥도는 소신을 택합니다. 엄흥도의 "다 왔습니다"라는 말은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가장 마음 아픈 대사로 남습니다.


'왕과 사는 남자'는 비록 어색한 CG나 다소 억지스러운 말장난 같은 아쉬운 점들이 있지만, 중반을 넘어 후반부로 갈수록 차곡차곡 쌓이는 감정들이 모든 아쉬움을 상쇄합니다. 유해진, 박지훈, 유지태 배우를 비롯한 모든 출연진의 연기는 역사 속 비극을 사람의 마음으로 다시 한번 바라보게 만듭니다. 설 연휴 가족들과 함께 볼 영화를 찾는다면, 이 작품은 충분히 가치 있는 선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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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상: 왕과 사는 남자 리뷰 / https://www.youtube.com/watch?v=DMKg_th-6vo